· · 에세이
앞으로의 30년은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주말 농장을 하기로 하고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어쩌다 농사를 시작했냐는 말이다. 신기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의 고향은 서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잠시 대학으로 대전에 간 것을 포함해서도 완전히 도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골이 남해에 있어서 농촌, 시골이라고 생각하면 낯설지는 않다. 눈을 감으면 겪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로 들은 어머니 아버지의 고향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남해 시골에 살다 보니 학교가 면에 하나 있는 수준이었고, 하루에 20km를 왕복으로 매일 걸었다고 한다. 그 길을 아버지처럼 지독하게 걸어본 적은 없지만, 명절마다 뛰어 놀아서일까. 할머니의 화장실이 한동안 푸세식 화장실이어서일까. 바닷가에 갯강구 정도는 익숙해서일까. 바다와 논밭들은 내게 익숙한 느낌을 준다.
유치원 다닐 때 즈음에는 배나무를 한그루 배정받았다. 어린이들의 체험을 위해서 미리 심어두고 분양하는 것이었을 거고 아마 내가 다니는 유치원이 그 기관을 연계해주지 않았나 싶다. 내 배나무는 내게 각별하고 애틋한 마음을 들게 했다. 당시의 나는 키가 큰 편인 양갈래 꼬맹이였는데, 나무에 매달리거나 기대서 사진을 찍거나 하는 기억이 난다. 유년기의 경험은 문득문득 떠올라 어떨 때는 십몇년전의 일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 배나무가 어떻게 지내는지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작년에 나는 한국 나이로 30살이 되었고 30년을 도시에서 공부하고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앞으로 30년에는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생각과 함께 몇가지 결심을 했다. 하나는 다이어리의 친구의 생일을 쓰는 것이었다. 내 주변 다정한 사람들이 다이어리에 친구의 생일을 쓰고 챙기는 걸 보고 배우고 싶었다. 작년, 한국 나이로 30살이 되던 해의 1월 1일부터 하고 있다. 또, 매년 생일마다 기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건 친한 언니의 지인에게 영감을 받았다. 생일 선물을 주려는 사람이 있으면 ‘미안한데, 선물말고 나와 같이 기부에 동참할래?’ 라고 되묻고 마음을 모은다고 했다. 그대로 따라할까 하는 건 내 교우관계에는 무리라고 느껴졌다. 친구의 선물만큼 기쁜 게 없어서 굳이 그러고 싶지 않기도 했다. 매해 나이만큼 기부하기로 생각을해서 작년에는 30만원을 기부했다. 매년 30~60 사이의 금액을 기부해야하니까, 그때까지 거지가 되지 않고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매년 식목일마다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언제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도시에 나무가 없어서 평균 온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는 기사를 본 뒤 였던 듯 하다. 30살부터 100살까지 나무를 심으면 나무를 70개는 심을 수 있다. 내가 죽은 뒤에도 그 나무는 땅에 남을테니 환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가지 방법을 조사했는데, 하나는 나무를 심는 단체에 기부를 하는 일이었다. 또, 포레스트라는 앱이었나? 앱 중에 집중한 시간에 따라 실제로 나무를 심어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이런 간접적인 나무 심기는 직접 만질 수 없고 멀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점은 내가 관리를 하지 않으니 내가 죽은 뒤까지 나무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두번째는 땅을 빌려서 직접 심는 방법이었다. 남해 할머니는 고사리 밭으로 쓰이는 땅이 조금 있었고, 그 아이디어를 일단 아빠한테 얘기했다가 퉁명스러운 말만 들었다. 밭 관리도 안되는데 나무는 누가 관리하냐, 힘 쓰기 귀찮다 등의 피드백 이었다. 그 뒤로는 주변 땅이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언니의 형부 가족에 선산이 있다고 해서 언니한테 물으니 언니는 매우 좋아했다. 산 위치랑 이름도 알려줬는데, 언니의 시아버지와 가까워질 생각을 하니 왠지 좀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제주도에 땅이 있는 친구도 엄마한테 물어봐줬는데, 친한 친구고 나를 좀 좋아하시는 분이여서 흔쾌히 긍정의 답을 해줬지만, 뭔가 진짜 농지 대여 계약서를 친구어머니랑 작성할 생각을 하니 빚 지는 기분에 명절마다 어머니께 인사를 드려야할 것 같았다. 남에게 빚지는 일은 왠지 어색해서 할 수 없었다.
마지막은 땅을 사는 일이었다. 이건 의외로 쉽다는걸 알았다. 몇천만원 정도만 있으면 몇백평 정도의 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경매에 올라온 토지를 자주 구경했는데, 재테크를 하는 입장에서 주식 자산을 포기하고 수익성이 전혀없는 나무심기 취미를 하고 싶을만큼 이 땅을 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테크 수익도 아쉬웠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점은, 나무는 매년 한그루씩만 심겨야하고 연례 행사를 위한 땅은 한번에 많이 사야한다는 사실이었다. 250평의 땅에 나무 한그루가 딸랑있고 남은 땅은 놀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무 심기에 대해서 뚜렷한 해결책을 내지 못한채 25년이 지나갔다.
26년을 계획하는 연말이 왔다. 나는 다이어리를 샀고 25년 다이어리에 적힌 친구의 생일을 새로운 다이어리에 적었다. 생일에 나름 큰돈을 기부하는 대신, 원래 월에 10만원씩 기부를 하던 금액을 1만원으로 줄였다. 역설적으로 연간 총 기부 금액을 낮추게 되었다. 나무 심기에 대한 뚜렷한 방법은 여전히 없었다. 괜찮다. 아직 만 29살이고 만 30살이 되지 않았으니까, 30년 마다 다르게 산다고 이야기 하기에는 26년은 늦지 않았어, 내가 태어난 날 기준으로는 오히려 더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2월 근교로 드라이브를 하며 집에 돌아오고 있었다. 자연을 벗어나 도시로 돌아오는 일은 언제나 아쉽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무 말고 주말농장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심는 거니까 비슷하지 않나? 어쨋든 식물이랑 좀 친해지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동네 주말농장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그나마 인터넷에 알려진 정보가 많고 거리도 가까운 텃밭 분양해주는 사설 업체를 찾았다. 문자를 드렸는데 마침 그날이 분양 기간이었다. 땅을 한번보고 분양을 받아도 좋았겠지만, 드라이브에 돌아오는 길이라 매우 피곤했다. 블로그, 카페, 인터뷰 각종 기사에 적힌 몇년된 농장주의 번호가 사기치는 사람의 번호는 아니겠지 싶어서 신청하고 덜컥 연 사용비 12만원을 보냈다.
농장을 고민하면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는데, 서울에서 텃밭으로 사용되는 땅은 산에 있는 땅이었고, 접근성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서울은 땅 값이 비싸니까 산에 있는게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차가 없어서 항상 쏘카를 타고 다녔기에, 차가 있어야 내가 자주 농장에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가상각, 유지비, 중고/신차 등을 비교하고 감가상각이 잘 되지 않아 비용을 절약해주는 레이를 신차로 사야지 싶었다. 그런데, 레이의 출고기간이 7개월이 넘는데 농장은 4월에 오픈했다. 2월에 레이를 주문해도 농장 시작할 때 차가 없을 수 있었고 그럼 전혀 차를 사는 의미가 없었다. 중고차로 선회할까 하다가 인터넷 카페를 보니 지점마다 빨리 출고해주는 경우가 있다기에 신차를 알아봐야지 싶었다. 다행히 생산 라인을 꽉 잡고 있는 영업왕을 만났고 서비스도 좋아서 덜컥 계약했다. 차는 기적처럼 4일만에 나왔다. (이 영업왕 아저씨 때문에 다들 7개월 씩 기다리는 거 아닌가 싶다)
나는 이제 31살이고, 도시에서 보낸 30년과 달라진 것들이 있다. 식목일에 나무를 심진 않았어도 4월 4일부터 상추를 심었고, 비가 오면 텃밭에 물 주러 가지 않아도 돼서 기쁘고, 오래 자리를 비우면 작물이 죽으니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다. 열무를 씨앗부터 심어서 김치를 해먹고, 내가 심은 상추로 겉절이를, 케일로 해독주스를 만들어 먹는다. 농사 때문이었지만, 차를 산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캠핑 장비까지 사서 텃밭 옆에서 바베큐를 해먹고 산좋고 물좋은 곳으로 장거리 운전도 거뜬하다. 도시에서 초록을 찾는 초보 농부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