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세이

경제학 공부 - 기회비용

기회비용 : 그 활동을 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다른 활동들 가운데서 최선의 활동의 가치 - 경제학에서 진짜 비용은 기회비용이다.

20대 중반의 나는 작은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운 좋게 그 회사는 망하지 않고 좀 더 큰 스타트업에 인수된 적이 있었다. 런웨이*가 얼마 안 남은 회사에 있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기에 퇴사도 고민했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공짜 이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런웨이 : 추가 자금 조달 없이 앞으로 몇 달 동안 버틸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생존 기간 지표. 스타트업은 런웨이가 0이 되기 전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인재인수 형태였기에 다행히도 인수회사는 우리를 반겨주었다. PMI**의 첫걸음으로 진행된 행사에서 대표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떠나지 않고 함께하게 되어서 환영한다. 여러분들도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여기 남기로 한 만큼 같이 잘해보자는 말이었다. 공짜 이직이라고 가볍게 여기던 내 생각을 바꿨다. 내가 내고 있는 비용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그 깨달음은 조금씩 자라 시간을 소중하게 대하는 가치관으로 남았다. 직장인으로 살면 지불하는 비용이 주 40시간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뿐이 아니다. 주 40시간이 아닌 다른 무수히 많은 기회들을 우리는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온전한 3개월이 어떤 사람에게는 해외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유튜버가 될 수도 있고, 운동에 도전할 수도 있고, 언어를 배울 수도 있다.

**PMI : 인수 합병 후 통합, Post-Merger Integration

현재 나는 퇴사를 한 지 두 달 정도 되어가고 연말까지 남해에 살 계획이다. 앞으로 3개월 동안 남해에서 가벼운 아르바이트를 하며 감정평가사 공부를 하려 한다. 서울이 지긋지긋하고 사람도 싫다. 남해에서 만난 인심 좋은 어른들에게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서 여기에 좀 더 머무르기로 했다. 서울에서 하던 합주 팀도 그만둬야 했고, 주말 농장의 배추들을 돌볼 기회도 잃었고(합주, 주말 농장 다 서울 직장인에게 적합한 취미였던 것이다), 귀여운 우리 엄마의 집밥을 먹을 기회도 잃었다. 내가 낸 기회비용들이다.

회사에서 수동적인 공격성을 띠는 사람이 싫었다. PM이니까 어떤 행동을 봤을 때 싫어하기보다는 받아주는 게 맞았다. 수동적인 공격성을 가졌다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유형의 동료도 아니니까 그 정도는 좋은 성과를 위해서라도 프로답게 서로 대화하고 노력하는 게 맞다. '나도 좀 구린 면이 많으니까 알고 보면 이 사람도 참고 있겠지' 생각하고, 싫은데도 내가 노력한다고 생각하면 참는 기분이 드니까 싫다는 감정을 인지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사실 싫었고 지금은 더 싫다.

수동적인 공격성을 띠는 사람이 싫었던 이유는, 본인은 가만히 있었으니 잘못이 없고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조직 안에서는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을 진 빠지게 만들고, 직업인으로서는 원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며 맞춰가야 할 일을 상대방이 알아서 해결하기를 기다리는 셈이었다. 인간적으로도 타인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태도를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짜증나는 순간이 찾아올 때 가끔씩,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은 퇴사하지 않기로 매 순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는 UX 디자인, DA, 신사업개발, 제품전략, Growth MKT, PM, AI 빌더 여러 가지 직군을 경험했었다. 직군이 계속 바뀌니까 혼란스럽다가 나중에는 커리어 전문성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대신 6개월마다 나만의 게임을 시작했다. 매니저로 무탈하게 팀 운영해보기, 외주개발사 관리/협업해보기, 바이브 코딩으로 매주 배포하기. 매번 내가 이 게임에서 무엇을 이루면 이긴 것으로 할지, 나만의 승리 조건을 정의했다. 프로젝트가 잘되고 내 일만 너무 쌓이기도 했고, 겁나 열심히 만들었는데 하나도 안 되기도 했다. 그래도 승리 조건을 달성하는 보람이 있었다.

내 시간의 비용은 주 40시간의 근무가 아니었다. 자유인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알아보지 않기로 결정한 만큼, 괴로운 것에는 살짝 눈을 감아야 했다. 인내 - 요즘말로 '존버'는 엄청나게 능동적인 행위였던 셈이다. 수동적으로 40시간을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회사에서 어떤 게임을 할지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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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매
// two selves, one domain